“아빠! 이번에 진짜 중요한 투자라서 돈이 꼭 필요해. 얼마 전에 오빠한테 신도시에 있는 상가 매매한 돈 줬잖아. 오빠한테만 주지 말고, 나한테도 좀 주란 말이야. 아, 정말!”
승미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성연에게 조곤 조곤 이야기하는 여섯살 짜리 아이 같았다.
“승미야, 너 저번에도 코인 투자 한다고 많이 가져갔잖아. 이번에 또 그렇게 주고나면 아빠는 지낼 곳도 없어지는데, 이제 아빠 어디로 보러 오려고해.”
어린 아이 달래는 듯한 성연의 말투는 수 십년 전 만화 영화 캐릭터 옷을 입은 어린 딸에게 동화책 읽어주듯이 나긋나긋 했다.
“아우, 또 그소리야. 내가 아빠 없이 어떻게 살아. 그래도 조금만 주면 안될까?”
승미 역시 어린 딸이 아빠가 좋아서 어쩔 수 없어 하는 모습처럼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승미야, 신탁에서 더 돈을 뺄 수가 없단다. 그러니 오빠랑 연락해서 도움을 청해봐”
“알았어, 오빠랑 이야기 해 볼께” 승미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 서서 나가 버렸다. 전에는 애교를 잔뜩 섞어 이야기할 때 무리한 부탁도 들어줬던 아빠인데 얼마 전부터 안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면회소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승미는 못내 아빠의 돈을 받아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된 세상에서 아빠를 보려면 굳이 이곳까지 와야 하는 것이 내심 불만이었다. 2055년 가을도 벌써 깊어가고 있었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흩날리며 돌아오는 길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걷던 공원길 같았다. 어릴 때 갔던 그 공원은 초등학생 승미에게는 몽골 초원처럼 넓고 히말라야처럼 언덕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전화를 걸었다.
“사악한 존재에게 전화” 승미가 말을 마치자 앞 유리창에 오빠 얼굴이 비추어지면서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바쁜데 왜?” 승민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컴퓨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야, 나 돈 좀 줘” 승미는 다짜고자 돈 보내 달라고 이야기 하자 승민은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한다.
“내가 돈이 어디 있냐?” 그러자 승미는 쏟아 붙이면서 이야기 한다.
“저번에 아빠한테 상가 매매한 돈 받아갔잖아!” 그제서야 승민은 전화 화면을 쳐다 보면서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그건 엄마 집 옮기는 데 쓴 거잖아. 서울 집값 비싼 거 알잖아. 내가 모아 놓은 돈도 많이 보태 드렸어.“
“그럼 오빠가 모은 돈 주면 되잖아!” 승민은 고개를 가로로 젓다가 한 숨을 푹 쉰다.
”줄 돈은 없지만, 뭐하려는지 들어는 보자. 그래 우리집 막내 무슨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거야?“
승미는 최근 알게 된 코인에 대해서 설명한다. 승미 자신이 들었던 코인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과 레버리지 효과를 브로셔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설명한다. 이미 수십번도 더 읽어 봐서 줄줄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들어 있는 오타의 문단 위치와 제대로 된 단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상대로 승민은 단칼에 거절했고 왜 그런 투자가 위험한지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알았다고, 알았으니 그만해. 아빠는 그 안에서 투자도 안 하고 뭐 하고 있는거야. 다른 아빠들은 그 안에서 투자해서 돈도 잘 벌던데. 우리 아빠 조성연씨는 투자도 안하고 뭐하는지 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민이 언성을 높여 승미를 쏘아 붙이듯이 말했다. “너 또 아빠한테 갔어? 이제 아빠 신탁에 남은 돈으로 얼마나 더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넌 아직도 철이 안 든 거냐?”
승미가 턱끝을 치켜세우며 당당히 말했다. “그러니깐, 투자도 해서 돈도 불리고, 신탁에 돈도 더 넣으면 되잖아.”
아까보다 다 힘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컴퓨터를 쳐다 보면서 말했다. “전화 끊는다. 너도 이제 좀 정신 차리고 돈 필요할 때만 가지 말고, 자주 좀 아빠 보러 가고 그래.”
아빠와 오빠에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승미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반대편 차선은 나들이 객으로 꽉 막혀 있었다. 짜증만 나던 승미는 눈을 감고 파나니니 소나타 6번을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유민이 손자와 함께 있었다. “할머니~!” 손주 현주가 현관까지 뛰어 와서 와락 안기자 토닥 거리면서 손주를 안아주고는 아들 유민에게 이야기 한다.
“연락도 없이 웬 일이냐?” 유민이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내가 엄마 집에 오는데 연락하고 와야 하나? 근데 어디 갔었어? 한참을 기다렸는데.”
“너 할아버지 뵙고 왔다.” 유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도 데려가지,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은데”
“그래, 다음에는 현주랑 다 같이 가자.” 승미의 대답에 유민은 더 밝은 표정으로 현주를 번쩍 들어서 안고 소파에 가서 앉는다.
“현주는 엄마한테 언제 다시 가야 하니?” 승미가 묻자 유민의 낯빛이 해질녘처럼 어두워 진다.
“주말 끝자락에 데려가기로 했어. 현주 앞에서 뭐 그런 걸 물어봐“ 승미는 눈을 흘겼다.
“너는 MBA까지 나와서 신탁회사가 뭐냐.” 유민은 다시 표정이 밝아져서 신나게 나불거린다.
“얼마나 재미 있는데, 할아버지가 맡긴 신탁보다는 급이 낮은 회사지만 우리 회사도 고객이 얼마나 많은데” 신나게 자랑을 늘어 놓는데 유민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어, 유리님 무슨 일이에요? 서버가 갑자기 다운됐다고요? 그럼 스탠바이 서버가 올라 오겠조. 네? 장애 대응이 하나도 안된다고요? 어떤 서버인데요? 뭐라고요? 안되겠다. 내가 지금 바로 갈께요.”
엄마, 현주 좀 봐주고 있어요. 회사에서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돼. 전화 할께요.“ 유민은 말을 마치지도 않고 쏜살 같이 달려 나갔다.
유민이 현관을 우당탕 거쳐 나가고 승미는 현주옆에 앉아서 핸드폰 속 현주의 어릴 적 사진이며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은 보면서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현주는 못내 참고 있었지만 재미 없는 눈치였다. 그때 전화기에 조서현이라는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뭐야, 갑자기 왜 전화야’.
“여보세요. 아유 대단하신 조서현씨께서 미천한 제게 전화도 주시고 어인 일이십니까?” 승미는 비야냥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됐고, 뉴스 봤니?” 평소 같으면 말싸움을 한 보타리 했을 큰 언니지만 오늘은 정색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유민이가 다니는 회사가 ‘IIY‘ 맞지?” 승미는 유민이 회사 이름까지는 모르고 있어서 아마도 맞을 꺼라고 대답했다.
“지금 ‘IIY’ 무차별 공격당하고 있다는데 괜찮은 거야?“ 서현이 왜 유민이 회사까지 신경쓰는지 모르지만 아들의 회사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나서 뉴스를 확인 하려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전화 끊어 봐. 확인해 보게.”
“아니, 뉴스를 스마트폰으로만 볼 수 있나?“ 서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TV나 컴퓨터로 볼 수 있지만 휴대폰으로 확인해야 서현의 전화를 끊을 수 있으니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고 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민은 몇 번을 전화를 걸어도 통 받지 않았다. 뉴스를 찾아 보니 IIY 본사의 내부 사정으로 모델을 저장하고 있던 저장소들이 모두 정지했고, 백업 서버들도 모두 동일한 문제로 동작하지 않는다고 보도 했다. 승미는 회사에 큰일이 나서 유민이 오늘 집에 늦게 들어 올것이다라는 해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와 상황을 일축해 버렸다.

알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회사, 지역 및 각종 뉴스와 정보는 전부 허구이며, 동일한 이름의 인물·회사·지역이 실제와 일치하더라도 이는 작가의 상상력과 우연의 일치일 뿐,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나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